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언제 태어나셨는가?
어제는 불기(佛紀) 2552년 음력 4월 초파일 석가탄신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불자여서 아버지는 새벽부터 통도사 일산 포교당으로 봉사 가셨고 어머니는 강남에 있는 조그마한 수덕사 포교당 석가탄신일 봉축법회에 참석했습니다. 감히 불자라 말하기 어려운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강남에 다녀왔습니다.
불기 2552년이라고 하니 불자가 아닌 많은 분들은 2552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셨구나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는 서기 2008년 크리스마스가 2008년 전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분명하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자가 아닌 분들을 위해 불기에 대해 조금 설명해드리자면 불기는 부처님의 탄생 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즉 입멸한 해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불기(佛紀)란 말은 불멸기원(佛滅紀元)을 줄인 말이란 점에서 그 뜻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왜 불교에서는 기독교와 달리 탄신 일이 아닌 입멸한 해를 기준으로 삼는지는 죽음, 즉 열반에 종교적 해석 차이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촬영한 오대산 상원사 중대 적멸보궁 앞 연등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죽음은 적멸이라 부르는데 적멸(寂滅)이란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Nirvana)입니다. 니르바나라는 것은 불꽃을 불어서 끈다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모든 번뇌의 불을 끄고 진리를 깨달은 상태, 생사윤회를 초월한 평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다른 어느 종교보다 교조의 생명이 꺼진 상태를 높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적멸을 기준으로 불기를 계산해보면 부처님은 BC544년에 열반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세수 80세에 돌아가셨으니 태어나신 해는 BC624년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반한 해는 어느 근거로 BC 544년이라고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 그 근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1세기부터 남방불교에서 널리 통용되어온 남전대장경에서 부처님은 기원전 624년에 태어나 기원전 544년에 입멸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설명합니다. 세계불교도의회(W.F.B)에서도 이설을 받아들여 1956년 스리랑카에서는 부처님 입멸 2500년제를 성대하게 거행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때부터 불기를 이 설을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기에 대해 다른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 중국의 [주서이기]란 책에서 주 나라 소왕 24년에 부처님이 태어났다는 기록을 근거로 BC1027년을 주장하는데 이를 근거로 하면 올 해는 불기 3035년이 되고 이 불기는 1956년 세계불교도대회 전까지 우리나라가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보다 좀 이른 연도를 주장하는 설도 있는데 기원전 565 ~ 485 로 추산하는 설입니다. 이 설은 스리랑카에 전해오는 "대사헌 Mahavassa" 라는 문헌에 근거하는데 그에 따르면 부처님 당시부터 여름철 한번씩 지내는 안거 마다 점을 찍기 시작해서, 그 점이 975개가 되었을 때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연도는 "역대삼보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력490년이라고 한다. 따라서 기원전 565~485년이 부처님 생존연대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제가 생각해 볼 때 불교의 중국 전래 시기를 비추어봐서 그리 신빙성이 있는 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주장은 부파불교의 논서인 '십팔부론' '이부종륜론'에 근거해서 일본 불교학자 '우이 하꾸쥬'가 제창한 설인데 이설의 근거는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아쇼카왕이 부처님 입멸 후 116년 만에 등극했다는 설에 따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즉위연도가 기원전 268년이 되므로 그 기준으로 볼 때 기원전 463년이 입멸 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소카왕의 즉위 년도 또한 여러 기록이 달라 문헌상으로 100년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하니 정확한 근거라 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모든 여러 가지 설 그 어느 것도 정확한 문헌적, 학술적 근거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모든 근거가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한 이유는 당시 고대 인도인들은 기록에 그렇게 철저할 만큼 발전된 사회가 아니었으며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채택한 불기는 1954년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의회에서 부처님의 탄생 년도를 남방불교(남전대장경)의 설을 기초로 기원전 624년으로 결의한 것을 채택하고 그 해를 불기 2500년으로 선언하면서 우리나라도 그 불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점차 확립된 것입니다.
어째든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식 인정된 불기를 따라 부처님의 출생 년도를 계산해보면 지금으로부터 2632년 전 음력 사월 초파일에 네팔 남부에서 인도대평원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었던 카필라(Kapila城)을 중심으로 사카족의 작은 나라에서 아버지 정반왕(淨飯王)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마야부인이 태자를 낳기 위해 당시의 풍습대로 친정인 콜리성을 찾아가던 길에 룸비니동산에서 갑자기 산기를 느껴 무우수나무 꽃 가지를 잡고 옆구리로 태자를 출산했는데 그때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 비가 내렸으며 온갖 천신들이 나타나 예배하고 연못 속에선 용들이 나와 오색의 따뜻한 물을 뿜어 태자를 씻어 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갓 태어난 태자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을 걸은 뒤에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라는 선언을 했다고 경전에는 전하고 있습니다.
보물808 금동탄생불, 높이 23.4cm, 호림박물관
이런 탄생 설화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도의 고대 종교인 바라문교에서의 교리에서 바라문의 탄생은 이마로, 크샤트리아의 탄생은 옆구리로, 바이샤의 탄생은 평범하게, 수드라의 탄생은 발등으로 탄생한다고 믿어 왔던 신화적인 말에서 유래된 것인데 초기 불교가 고대 인도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의미하며 부처님이 왕족 출신이었음을 의미하고, 출산 때 여러 이변들은 부처님의 등장으로 인류역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며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부처님이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벗어나 해탈(解脫)을 이루셨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탄생은 인류역사에 대단한 사건임은 분명합니다. 불교가 역사적으로 보여준 자비와 이타보리심은 역사적으로 불교의 이름으로 단 한번의 정치적 폭력이나 전쟁이 없었다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진 수많은 전쟁과 이슬람 이름으로 치러진 수많은 정치보복에 비견할 만한 것입니다. 지금도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티베트 망명정부는 비폭력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그 어떠한 정치적 보복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비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 사상은 자기 스스로 존귀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사상입니다. 스스로 존귀하며 서있다는 사상, 그 누구도 구원해 줄 수 없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세계의 주인이라는,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임을 선언, 그것이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불기 2552년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온 누리에 부처님 자비심의 광명이 널리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2008 . 5 . 13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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