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 및 해설
이 <탈무드 임마누엘>을 번역한 사람은 상당히 오랫동안 편집자에게도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1974년 9월 14일,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그 가 보낸 편지를 편집자가 받아보게 된 같은 해 9월 19일에야 풀렸습니다.
편집 후기 뒤쪽의 글은 편지의 한글 번역문으로서 독자들은 그로부터 자세한 사실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두루마리 원본의 예기치 않은 분실로 말미암아 유일한 증거가 없어졌습니다. 더군다나 그로 인해 <탈무드 임마누엘>의 비밀은 전체가 다 알려지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곧 처음부터 36장까지만이 이용이 가능한데, 이는 원본의 약 1/4정도에 불과합니다.
본인이 <탈무드 임마누엘>의 나머지 부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독자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임마누엘은 모친인 마리아, 동생 토마와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과 함께 인도 북부로 떠나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그는 많은 나라에서 가르침을 전파했지만, 그의 가르침들이 너무나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피신을 해야만 했습니다. 인도로 가는 여정은 여러 차례의 난관에 봉착해 가면서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오늘날의 파키스탄 북쪽에 높이 서 있는 서 히말라야 산맥의 마지막 산기슭에서, 마리아는 임마누엘이 38세 되던 해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모친의 사망 후 임마누엘은 계속 이동하여 오늘날의 인도 캐시미르 지역으로 갔고, 그 곳에서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북쪽으로는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다녔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이주해 간 10개의 부족들이 정착해 있던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서 파키스탄까지를 돌아다녔습니다.
임마누엘이 45세 가까이 되었을 때, 그는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여러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다른 여느 집의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인도 캐시미르의 스리나가르에 정착하였습니다. 그 곳을 기점으로 하여 그는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계속 전파했습니다.
그는 110세에서 115세 사이에 노환으로 사망하여 스리나가르에 묻혔습니다. 또한 유다 이스카리옷은 약 90세 정도에 사망하였는데 역시 스리나가르 근처에 묻혔습니다. 임마누엘의 장남인 요셉은 그의 부친의 전기를 계속하여 기록했습니다. 임마누엘의 사후에는 인도를 떠나 3년간의 여행을 한 끝에 부친의 나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출발할 때 두루마리 원본을 가져다가 임마누엘의 육신을 누인 동굴 안에 감추었습니다. 그는 그 장소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이 두루마리는 그 곳에서 발견되었고, 그 중 36장이 이렇게 번역되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힌빌에서, 1974년 9월 20일
편집자 에두아르트 "빌리 " 마이어
이사 라시드의 편지
바그다드에서, 1974년 9월 14일
Poste Restante
Head Post Office
Baghdad
IRAQ
친애하는 벗 빌리에게 :
친애하는 벗이여, 그간 오래 편지를 하지 못했고 두루마리의 추가 번역도 그대에게 보낼 수가 없게 된 데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행히도 이제는 현실로 나타난 나의 두려움에 원인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항상 말했듯이, 나는 그 두루마리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박해를 받게 될 것으로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태가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바그다드의 가까운 친구 집에 머물고 있지만, 이 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고 곧 다시 옮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디로 갈 지는 나도 모르지만 가능한 한 빨리 당신에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다른 두 그룹, 곧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로부터 추적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측을 했어야만 했던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루마리가 이 두 종파의 어느 쪽에도 호의적이 아닌 까닭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으로 피신했을 때, 나는 가족과 같이 그곳 난민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에게 발견이 되었고 이스라엘 군대가 그 수용소를 습격했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나와 가족들은 간신히 학살의 현장을 탈출하여 또 한 번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루마리들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유태인들이 그 수용소를 불태웠을 때 그 두루마리들이 모두 불타버린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만, 혹시 그것들이 그들의 손 안에 들어갔을 수도 있을까요? 그 때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대한 보복 작전을 실시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카톨릭 교단에서 파견된 몇 사람들과 함께 나와 그 두루마리를 쫓은 것입니다. 보복 작전이라고 우겨댐으로써 그들의 만행의 실질적 이유와 목적을 위장하고 날조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두루마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신약 성서>가 인류가 그로 인해서 저주를 받게 된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을 입증하는 어떤 증거도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친애하는 벗이여, 불행히도 이것이 최근에 일어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이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여튼 당신은 <탈무드 임마누엘>의 36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 및 다른 종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중을 기하셔서 그 얼마 남지 않은 임마누엘의 가르침이나마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입니다. 나로서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손을 떼고자 합니다. 내가 내 가족들을 지금보다 더한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것을 출판할 경우에는 내 이름과 다른 모든 것들을 비밀로 해주십시오.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나는 내가 당신을 항상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종종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나와 내 가족은 최대의 경의를 보냅니다.
이사 라시드
옮긴이의 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그 종교들은 제각기 어떤 절대적인 신이 자신들에게 계시를 주었고, 자신들은 그 계시를 기록한 경전들을 가졌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경전들을 신성시하거나 그것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선전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경전들에 담긴 정신은 무시한 채 자구(字句)에 얽매이거나, 그 자구들을 해석하는 데 이렇게 해석하면 '정통'이 되고 저렇게 해석하면 '이단'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분파(종파)가 발생하였고, 그 가운데서 일단 '이단'이라고 낙인이 찍히게 되면, 이른바 정통 종파는 이단 종파를 무자비하게 박해하고 말살해 버리는 일에 서슴없었습니다. 그들 '정통' 종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신의 말씀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이라고 자부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와 신앙을 수호했노라고 자랑스러워하곤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기독교가 <성서>를, 이슬람교가 <코란>을 무기로 삼아 오늘날까지 그러한 이단 재판과 박해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한다면, 과거 인류 역사에 어떤 사실이 있었고, 모든 경전들은 그에 대한 한 기록일 따름이지 사실 자체는 아님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다만 과거 사실에 대해 주관적 견해를 가진 후대 사람들이 기록한 것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신약 성서>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사건 후 약 40년이 지난 서기 70년경에 씌어졌다고 성서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실제 삶과 행적, 그리고 말씀이라는 사실 자체와 기록된 복음서 사이에는 단지 시간적인 간격만이 아닌 많은 차이와 변경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코란>을 비롯한 다른 경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 경전들을 전혀 오류가 없는 기록으로서 신성시 또는 절대시하면서 오늘날까지 모든 사물과 행위를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기록된 경전들에 생사를 걸고 연구와 설교를 계속해 왔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그 경전 가운데 어느 한 구절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리기도 했는데, 후대에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순교자나 성자로 불리며 추앙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 번 솔직하고 진지하게 말해 보십시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이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귀중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생명이나 생명 그 자체보다 귀중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종교나 철학, 사상, 그리고 윤리라 할지라도 생명보다 더 귀중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자신의 생명이나 그 어떤 것의 생명이라도 가볍게 여기게 하고, 순교를 미화하거나 권장하는 종교나 사상이 있다면, 우리는 단연코 그것들이 진리가 아닌 줄로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탈무드 임마누엘>은 결코 성스럽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앞서 든 여느 경전들을 대체할 만한 책도 아닙니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임마누엘의 제자인 유다 이스카리옷(흔히 ‘가룟 유다’라 불려온)이 스승을 따라 다니면서, 임마누엘의 지시로 그의 행적과 가르침을 적은 기록이라고 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탈무드 임마누엘>은 <신약 성서>의 어떤 복음서들보다도 먼저 기록되었고 권위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록이 그렇다고 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탈무드 임마누엘>은 완전한 것이 아니며, 성경이나 성서, 성전 등으로 불려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종파라도 이 책을 경전으로 사용한다거나, 또는 어느 누구라도 이 책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종파를 건설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릇된 일입니다.
그 사람이나 새로운 종파는 결코 이 세상을 구원할 수가 없고 세상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셈이며, 그것은 결코 이 책의 주인공이신 임마누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본래의 분량의 1/4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원본은 폭격으로 불타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이 책의 원문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그 뒤에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그것이 다시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시 그 영어판을 저본(底本)으로 한글로 옮긴 것이니 어찌 오역(誤譯)의 가능성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이 책의 독일어 번역자인 "빌리" 마이어는 독일어 번역문을 함께 싣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야흐로 지구 밖의 우주를 향하여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지구적인 인간의 삶에서 우주적인 인간의 삶과 사상으로 변천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탈무드 임마누엘>은 이러한 때가 이천 년 뒤에 도래할 것이고, 그때에는 이 책이 그 시대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은 종교성이 풍부한 한국 사회와 보수적인 어떤 종파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곧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이 책의 출현을 도전으로 간주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진리 아닌 진리를 사수하려는 데 급급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의 내용을 자신들의 경전과 이성적, 논리적으로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세상의 많은 종파들이 제각기 자신들이 신봉하는 교리만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종파에 대한 종파의 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립 요인이던 냉전 체제조차 무너진 이 마당에 민족과 민족, 그리고 종파 간의 갈등과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매우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안 믿든지 간에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종교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랄 뿐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탈무드 임마누엘>의 해설서를 기대합니다.
1994년 11월 미국 L. A. 코리아 타운에서
옮긴이 이 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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