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원하고도 통렬한 생명의 말씀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2,000년 역사의 빛 바랜 기독교 정신이 그 동안 우리에게 어필해 왔던 것은 단지 편향된 시각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본서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신비화’의 가면을 벗고 새로이 접근되는 예수의 신성(神性)으로서 신비화된 예수의 인간적인 외침과 진리의 가르침은 독자 제현들로 하여금 진주알같은 이슬 방울이 눈가에 맺혀 빛나게 됨을 느끼게 하리라. 왜냐하면,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이 지금까지의 피상적인 기독교 사상에서 한 차원 뛰어넘어 기독교 정신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진리의 정수(Essence)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으며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신약성서에 나와 있는 예수의 탄생, 수난, 죽음, 장례, 부활 등에 대한 공관 복음서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신약성서에 은폐되어 있는 12세에서 30세까지의 구도적 과정이 명백하고도 상세하게 밝혀져 있어 독자들의 진리욕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독교의 구원의 도맥은 구약의 멜기세덱 그리스도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사랑과 희생의 철저한 구원정신으로 성립되는 신선맥(神仙脈)이다. 이제 신약 시대가 역사의 노정 위에 조용히 안식을 취하고 신과 인간이 합일하는 인류의 보편적 인간 완성(구원)과 환상 속에서만 그려온 천국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성약 시대(보병궁 시대)’를 맞이하여 기독교 최종 구원인 천주님(하나님) 강림으로 제3의 그리스도 출현의 성약(聖約)은 이루어지리라. 그리하여 본서를 ‘보병궁 시대의 복음서 기독교 비사(秘史), 성약성서(成約聖書)’라고 한 것은 당연하다.
유대 민족이 애급에서와 같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의 노정을 잃지 않고 유대 민족의 정통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여호아 하나님께서 그들 민족 속에서 메시아를 내보내리라 언약한 구약의 복음 내용 때문이었다. 유대 민족은 그들의 여호아 하나님을 잘 모시는 대가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메시아를 언약 받는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환생(Incarnation)함으로써 새로운 신약의 복음이 선포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최후의 심판이 오기 전까지 인간이 행해야 할 규범과 믿음, 사랑, 소망에 따른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공개된다. 그런데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12세부터 30세까지의 인간적인 행적을 은폐시켰다. 물론 예수는 한 개인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인류의 속죄양으로 오신 메시아이므로 그의 개인적인 삶은 우리가 알 필요없다고 극구 부인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너무나 신격화하고 신비화한 나머지 교리라고 하는 울타리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아예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은 아집과 독선에 의한 배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흑백 논리가 천국 아니면 극락, 극락 아니면 천국이라는 논리와 거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밝혀 준 다음과 같은 말은 기독교 정신에 흐르고 있는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인간적인 생활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와 조화시키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의 지상에서의 모든 과제는 끝난 것이다. 나의 일생은 人子(The Son of Man)들을 위한 하나의 큰 드라마였으며 타인의 모범이 되는 데 있었음을 그대들은 잘 알고 있다. 나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하여 생활했다. 내가 이룬 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본서 178: 43, 45, 46)‘사람들은 나를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이름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그리스도는 우주 보편적인 사랑이며 사랑은 바로 왕입니다. 나 예수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지만 갖가지 형태의 시련을 통해서 많은 유혹을 극복하여 그리스도가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일 뿐입니다.’ (68: 11-12)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간은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부터 멀어진, 육화한 신이며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신성(神性)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보다 마음을 순결히 정화하여 우주 보편적 사랑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예비해야만 한다.
예수는 그가 애급에 있는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밀의적 聖 형제단(Sacred brotherhood 일종의 冥想道家)에 입문하기 전에 ‘저는 모든 지상 생활을 더듬어 보고 싶습니다. 널리 학문적으로도 추구해 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오른 높은 곳에 저도 오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고통받은 것을 저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으로 내 형제들의 비애, 실망, 가혹한 시련이나 시험 등을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온갖 시련과 유혹과 고난을 통하여 1)Sincerity(誠實), 2)Justice(公正), 3)Faith(信仰), 4)Philanthropy(博愛), 5) Heroism(義烈), 6)Love Divine(聖愛)의 단계를 거쳐 7)The Christ라는 최고의 칭호를 얻게 된다.
영원한 조화생명을 깨달은 예수에게 그리스도가 임하여 그리스도화 되어진 것처럼 모든 인간도 그리스도화 될 수 있다는 복음은 생명의 목적이 완성이며 인간의 최후 종착역이 신과 함께 영원한 존재로 향상하는 데 있다는 것과 일치한다. 그리하여 그 당시 유일신에 대한 관념의 노예였던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 할 때 ‘내가 하나님의 진리의 선한 일을 너희들에게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러한 나를 왜 돌로 치려 하느냐’고 예수께서 항변한다. 이 때 유대인들이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대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참람함, 즉 신에 대한 불경, 신성모독 때문이라고 무지한 군중들이 정죄의 해명을 한다. 이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옛이야기를 들추며 인간 자신의 정체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린 이 무지의 광기로 분노하는 맹신의 폭도들에게 힘있게 깨우쳐 준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하지 아니하였으냐?(Is it not written in your laws? I Said, Ye are gods.)’,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거늘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Blasphemy) 하느냐’
사실, 이 책을 읽고 이러한 책이 왜 국내에서 소개가 안 되었는지에 대해 놀랄 필요는 없다. 마치 아리마대 요셉이 ‘어찌하여 당신들은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까? 그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놀랄 일은 예수만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라고 반문한 것처럼 오히려 이러한 기독교의 정통적 복음이 2,000여 년의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사장된 채 진리가 왜곡되어 고정화 된 것이 놀라운 것이다. 미국에서만도 60여 판을 거듭하여 찍어냈으며 전세계로 번역되어 기독교인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이 책이 국내에서 소개가 안되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의 순수복음을 자신의 생활도구로 삼아 보다 높고 보다 큰 매머드 교회로 만드는 데 급급한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에게는 본서에 흐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생한 육성이 그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책을 사탄의 책으로 몰아 결코 소개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바로 이 점이다. 그만큼 이 책은 고전적 보수 신학으로 타성에 젖어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다분히 혁신적인 내용의 복음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은 결코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2,000여 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이 그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이유에서 단지 이 책이 새롭고도 혁신적으로 느껴지는 것 뿐이다.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말은 없지만 인간도 우연히 던져진 운명적 존재로 파악하는 서구정신으로 볼 때 이 책은 실로 나에게 우연히 던져진 책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연적 필연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지난 83년 여름은 지난 어느 해보다 유난히도 무더운 폭염의 날씨였다. 더위에 지친 사람이 일사병으로 죽은 사건이며 낮의 혹서에 시달린 시민들이 부산 용두산 공원, 남산, 역 광장에서 밤 12시까지 몰려 앉아 더위를 이기려 했으며 심지어는 밤만 되면 역 광장으로 출근하여 새벽이면 퇴근하는 시민들의 진풍경이 TV를 통해 방영된 바 있었다. 신촌의 조그마한 하숙방에서 그 길고도 무더운 여름 내내 타자기를 두드리며 생활한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해는 바뀌어 책으로 나오기는 나오나 보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어 신앙하는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간의 한계성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귀한 희생정신을 머금고 역사정신 위에 각인(刻印)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외침과 진리의 가르침에 조용히 머리 숙여지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말씀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커다란 여울이 되어 새로운 영혼의 날개로 한없이 펼쳐져 있는 내적 세계로 비상하기를 기도하며…….
1984. 1. 17.
譯 者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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