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말 토성탐사선 카시니 호는 토성에서 600만km 떨어진 곳에서 126장의 컬러 사진을 연속 촬영햇다. 그 사진들을 완벽하게 짜맞춰 역사상 가장 정교한 토성 사진인 이 합성 사진이 완성되었다. 1997년 토성으로의 여정을 시작한 카시니 호는 가장 야심찬 우주 탐사계획을 수행 중이다.
수십억 개의 얼음 입자들로 이루어저니 토성 고리의 평균 두께는 불과 40m밖에 안된다. 수억년 전에 토성의 위성이나 혜성의 파편들이 모여 형성되었을 이들 고리는 먼지 때문에 어두운 파스텔 색조를 띠게 되었다.
토성의 고리들이 토성 상층 대기의 잔잔한 구름층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해질 무렵 토성의 위성 미마스가 토성을 배경으로 아주 조그만 실루엣을 드러낸다
얼음으로 뒤덮인 위성 디오네가 사진 아래쪽에 아주 얇게 보이는 토성의 고리 위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비는 1000년에 단 한 번 내린다. 메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유독성 대기가 햇빛을 뿌옇게 가려 하늘은 늘 오렌지색 황혼빛이다. 기온은 영하 179℃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거대한 환경이다. 그리고 고리를 두른 토성의 모습이 흐린 하늘 위로 거대하게 보인다.
이곳은 토성의 최대 위성인 타이탄이다. 섬뜩할 정도로 지구와 닮았다. “타이탄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피터 팬 같은 세계입니다.” 하와이주립대학교 천문학 연구소의 토비아스 오웬은 말한다. “지구 같은 행성이 될 수 있는 물질과 원소는 다 가지고 있지만 기회가 없었던 거죠.” 타이탄의 짙은 대기는 “스모그가 잔뜩 낀 도시처럼” 탄화수소 스모그로 가득 차 있다고 오웬은 말한다. 아주 가끔씩 메탄 비가 내리면 금세 강을 이뤄 낮은 언덕에 깊은 물질을 내면서 모래 벌판으로 흐른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타이탄에서도 지질활동과 화산활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곳의 화산활동은 느리게 진행되고 차가우며 반쯤 녹은 얼음 물과 암모니아가 뒤섞인 용암 같은 것이 분출된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타이탄에 부는 부드러운 바람속에 유기 분자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 그 중 일부가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이 된 물질을 제공한 유기화합무로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위성표면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연무층을 보여주기 위해 채색된 영상)
카시니 우주 탐사선
타이탄의 모습을 머릿속에서만 그려 보던 오웬같은 행성과학자들은 이제 그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서 조종하는 무인 탐사선 카시니 호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카시니 호는 지난 2년 반 동안 토성의 고리와 위성 근처를 돌면서 이 거대한 행성을 면밀히 관측했다. 또 소형 탐사선 호이겐스 호를 타이탄 표면에 내려 보내기도 했다.
호이겐스 호가 타이탄에 착륙한 것은 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토성 탐사계획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토성은 토성의 내부를 이루는 특이한 물질인 금속 수소에서 고리를 이루는 미세한 입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괴상한 얼음 위성인 포이베에서 지구의 간헐천처럼 수증기와 얼음 입자를 분출하는 엔켈라두스 위성에 이르기까지 태양계가 46억 년 전에 어떻게 생성되었고 생명체를 어떻게 탄생시켰는가에 대한 단서들을 쥐고 있다. 토성과 토성의 고리들, 그리고 주위를 도는 위성들은 “태양계의 구조와 진화 과정을 보여 주는 태양계의 축소판”이라고 NASA 에임스 연구센터의 행성과학자 제프 쿠지는 말한다.
토성의 신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벗겨졌다. 1610년 갈릴레오는 토성 옆에 있는 위성 두 개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손수 제작한 조잡한 천체망원경으로 잘못 본 것이었고 후에 놀라운 토성의 고리임이 밝혀졌다. 1656년 이 사실을 밝혀 낸 사람은 네덜란드의 천문하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타이탄 탐사정은 그의 이름을 딴 것임)였다. 호이겐스는 또한 토성의 고리 바깥쪽에서 희미한 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이것은 토성의 위성으로, 그리스 신화에 지구 초기 세계를 지배한 거신족(巨神族)으로 등장하는 ‘타이탄’이란 이름을 나중에 갖게 되었다.
그 후 토성의 위성은 10년에 하나 꼴로 발견돼 지금까지 찾아 낸 위성은 총 56개가 된다. 1940년대 들어 망원경 성능이 좋아지면서 천문학자들은 타이탄이 연무에 싸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태양계의 다른 위성과 달리 타이탄은 짙은 대기층을 갖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였다. 1979년 드디어 최초의 우주 탐사선 파이어니어 호가 토성 상공을 통과했고 1980년과 1981년에는 보이저 1호와 2호가 그 뒤를 따랐다. 탐사선들은 토성을 지나면서 토성과 고리, 위성을 근접 촬영했다.
수세기 동안 계속된 호기심과 기대 끝에 드디어 과학자들은 토성을 장기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접시 모양의 흰 안테나를 위에 달로 온갖 과학장비를 탑재한 6.7m 높이의 원통형 금속 탐사선 카시니-호이겐스 호는 NASA와 유럽우주국, 그리고 이탈리아우주국의 합작품이다. 카시니 호는 1997년 토성을 향해 발사돼 2004년 6월 30일 토성에 도착, 4년 넘게 계속될 기나긴 탐사활동을 시작했다.
35억km의 여정 끝에 카시니 호는 토성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그런 후 다시 엔진을 분사해 바깥쪽 고리를 뚫고 들어가 토성 대기 2만km 상공의 누르스름한 구름층까지 접근했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카시니 탐사계획 책임자 로버트 미첼은 당시를 회상한다.
토성의 고리는 매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십억 개의 부스러기로 이뤄져 있다. 입자의 크기는 아주 미세한 것에서 집채만한 것 까지 다양하다. 카시니 호가 시속 11만km의 엄청난 속도로 고리 사이를 통과하는 도중 조약돌만 한 알갱이 하나라도 부딪히는 날엔 34억 달러짜리 토성 탐사계획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다. 카시니가 토성 궤도에 진입해 고리들을 무사히 통과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니다에 있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미첼팀은 초조하게 카시나가 보내 오는 신호를 주시했다.
토성은 목성 다음으로 큰 행성으로 부피는 지구의 700배가 넘는다. 그러나 이 행성은 거의 전체가 수소로 이뤄져 있어 물보다 가볍다. 만약 직경 12만 500km의 거대한 바다가 있어 그 안에 토성을 떨어뜨린다면 거대한 노란색 스펀지 공처럼 물 위에 둥둥 뜰 것이다. 토성이 자전 속도는 무척 빨라 적도 부분이 원심력에 의해 불룩 튀어나와 있으며 적도 지름이 극 지름보다 1만 1800km나 길다. 또 이 빠른 자전 속도 때문에 토성의 하루는 11시간도 안 된다.
토성은 대부분이 가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자전주기를 측정할 만한 고정 지표가 없다. 그러나 내부에 존재하는 금속 수소가 강한 자장을 형성하는 데 이 자장이 행성과 함께 회전한다. 지난 2년에 걸쳐 카시니 호가 측정한 자장의 회전 주기는 10시간 47분 6초다. 물론 토성이 자장과 완전히 똑같은 속도록 도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편 자장은 토성의 중심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46억 년 전 태양이 탄생하고 그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던 원반 모양의 먼지와 가스 구름 속에서 토성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입자들이 하나둘씩 뭉치면서 덩어리는 커졌고 자체 중력이 생겨났다. 이 중력은 주변물질을 계속 끌어들여 철과 암석으로 된 더 큰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덩어리들 중 아마 지구 질량의 몇배는 되었을 덩어리 하나가 토성의 씨앗이 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암석으로 된 이 핵은 자체 중력으로 거대한 수소 가스 구름을 끌어당겼다. 수소가 핵둘레에 정착하자 행성의 질량은 급속도로 증가했고, 이와 함께 내부 압력이 커지면서 가장 안쪽의 수소층이 크게 응축했다. 과학자들은 이 고압 상태에서 수소가스는 초전도체인 액체 금속으로 변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금속 수소에 흐르는전류가 토성에 거대한 자장을 만든다.
40억 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토성의 핵은 처음 형성 당시 발생한 열을 계속 지니고 있어서 이 열이 토성의 가장 안쪽 대기층의 거대한 상승류들을 휘젓는다. 이들 상승률는 태양계에서 가장 빠른 바람 축에 드는 최고 시속 1500km의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며 토성에 기후 활동을 일으킨다. “대기에서 폭풍과 번개, 구름지대, 그리고 특이한 파도 무늬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케빈 베인스는 말한다.
이런 대기의 요동은 토성 대기 맨 위층의 고요하고 누르스름한 구름층에서는 목격되지 않는다. 이 구름 충 위로 멀리서 비쳐 오는 태양빛이 토성 고리의 그림자를 그려 놓는다.
주 고리들 중 가장 바깥 쪽에 있는 A고리의 최대 지름은 약 26만 5500km이다. 그러나 얼음 입자로 된 이들 고리의 두께는 평균 40m에 불과하다.
이 고리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음으로 된 이성이나 혜성이 토성의 중력에 의해 파괴되어 만들어졌을 것으로 일부 과학자들은 추측할 뿐이다. 어떻게 생성되었건 간에 고리들은 우주의 시간으로 볼 때 최근에 형성된 것들이다. 고리의 밝은 색상이 그 사실을 말해 준다. 하지만 이 고리들은 태곳적에 일어난 사건, 즉 태양계의 형성기를 가늠케 해 준다.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태양을 중심으로 궤도를 돌던 입자들과 새로 태어난 행성들과의 관계를 말이다.
오늘날 이 고리에서는 토성의 아주 작은 위성들이 행성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위성 각각이 가진 중력은 미약하지만 고리 모양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고리를 이루는 입자들이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위성들은 고리와 고리 사리에 틈을 만드릭도 하고 중력작용으로 근처 고리에 물결 무늬를 새기는 ‘밀도파’를 보내기도 한다.
1980년 보이저 1호 촬영
2005년 카시니 호 촬영
보이저 1호가 찍은 토성의 F고리에서는 가느다란 고리들이 꼬여 있는 모습이 관찰됐는데, 그로부터 25년 후 카시니 호가 찍은 사진에는 이 고리들이 물결 무늬로 바뀌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두 개의 위성, 판도라와 프로메테우스의 궤도가 서서히 바뀌면서 중력장도 움직여 고리들의 모양이 변하고 있다.
보이저 호가 위성과 고리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최초로 기록했고 카시니 호는 여기에 세부사항을 덧붙였다. 이를테면 2004년 6월 토성 고리들을 통과하면서 A고리에 아주 작은 위성들이 존재함을 보여 주는 증거를 포착했다. 수백만 개에 이르는 듯한 이 소형 위성이 직경은 몇 백 미터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가진 중력은 고리에 자국을 내기에 충분하다. 토성에서 더 멀리 떨어진 F고리에서는 가느다란 고리들(토성의 고리는 수백 개의 가느다란 고리들로 이뤄짐)이 꼬여 있는 모습과 함께 소형 위성이 고리의 입자들을 끌어당겨 서로 뭉치게 했다가 다시 흩뜨리는 영상을 보내 왔다.
“이는 위성과 소형 위성이 가는 고리들과 상호작용하며 고리의 형태를 바꿔 놓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쿠지는 말한다. 또한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준다. “이를 통해 원시 행성 원반(원시 태양의 궤도를 도는 물질들의 분포 공간)에서 행성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태양계가 형성되었던 머나먼 과거의 유물 하나가 지금도 토성 주위를 돌고 있다. 토성의 위성 포이베다. 포이베의 공전 방향은 다른 대다수 토성의 위성과 반대다. 이는 포이베가 대부분의 위성과는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카시니 호는 2004년 토성에 접근하면서 직경 220km의 이 위성이 얼음과 암석, 탄소화합물로 이뤄진 덩어리임을 알아냈다. 이는 태양계 바깥쪽에서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 ‘카이퍼 벨트’의 작은 얼음 천체들과 흡사하다. 이 첸체들은 태양계 외곽의 행성들을 만들고 남은 잔재들로 추정된다.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 카이퍼 벨트의 작은 천체들은 명왕성 너머로 멀리 내던져졌다. 그 와중에 포이베는 새로 생성된 어린 토성의 궤도에 빨려들어가 뒤에 남은 것으로 보인다.
토성의 다른 주요 위성들은 아마 토성의 재료와 동일한 가스와 먼지, 암석 덩어리 속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카시니 호가 보내 온 사진을 보면 어떤 것은 암석과 얼음이 느슨하게 뭉쳐진 덩어리에 불과하다. 360km 길이의 길쭉한 감자 모양인 히페리온이 그렇다. 더 큰 위성들은 밀도가 더 높고 표면에 과거의 사진이나 내부의 열, 또는 그 열로 인하 지질활동의 결과인 분화구, 언덕, 물길 같은 뚜렷한 특징을 지닌다.
보이저 호가 보내온 사진들을 보면 직경 1456km의 위성 이아페투스는 한쪽은 하얗고 반대쪽은 검은, 두 개의 반구로 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이 위성에서 거의 얼음으로만 된 부분은 밝게, 암석과 유기물질로 덮은 부분은 어둡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카시니 호는 새로운 미스터리들을 발견했다. 이아페투스도 토성처럼 중앙이 불룩하고 적도를 따라 히말라야 산맥보다 2배나 높은 능선이 뻗어 있었다. “아무도 이 두 가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넬대학교의 피터 토마스는 말한다.
토성의 위성 중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최대 위성 타이탄이다. 카시니 호는 토성에 도착한 지 6개월 만인 2004년 12월 25일에 탑재하고 있던 커피잔 받침 모양의 탐사정 호이겐스 호를 발사했다. 호이겐스 호는 그로부터 3주 후에 타이탄의 짙은 대기권 안으로 진입했다.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는 유럽우주작전센터에서는 수백 명의 과학자와 학생, 기자들이 강당을 가득 메운 채 타이탄에서 보내는 첫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당 안의 웅성거리는 대화 속에 들리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통해 호이겐스 호가 국제적인 협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총알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날던 호이겐스 호는 딱 1시간 일찍 타이탄의 상층 대기권에 진입했다. 타이탄 대기와의 마찰로 탐사정의 방열 덮개의 온도는 약 1500℃까지 치솟았다. 몇 분 후 호이겐스 호의 속도는 떨어지고 온도는 내려갔다. 이어 낙하산이 펴지면서 방열 덮개가 떨어져 나갔다. 이 탐사정은 바람을 타고 낙엽처럼 낙하하면서 카메라와 마이크로 이 머나먼 세계의 날씨를 기록했다.
호이겐스 호가 하강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넓은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관제사들은 이미 호이겐스 호가 보내 오는 신호를 받고 있었다. 이 탐사정이 대기권 돌파 후 무사하다는 증거였다. 카시니 호를 통해 중계되는 호이겐스 호의 신호들은 지구까지 전송되는 데 67분이 소요됐다. 오후 5시, 마침내 유럽우주국의 과학국장인 데이비드 사우스우드가 강단에 올라와 호이겐스 호가 타이탄에 안착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우리는 타이탄의 첫 방문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수신된 신호가 컴퓨터 처리되어 영상자료로 변환되기를 기다릴 차례였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갑자기 저해상도의 흑백영상이 강당 전면을 둘러싸고 있는 TV 스크린에 나타났다. 호이겐스호가 낙하하면서 찍은 이 사진은 울퉁불퉁한 언덕들과 어두운 평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TV앞에 몰려들었고 타이탄 위성은 보도진으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관심을 받았다. TV 카메라맨은 카이탄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고 사진기자들은 카메라맨들의 이런 모습을 찍어 댔다.
더 많은 영상들이 이어졌다. 그중에는 타이탄의 표면을 공중에서 연속 촬영한 사진들을 급히 합성한 모자이크 영상도 있었다. 드디어 타이탄에 착륙해서 찍은 첫 영상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 컬러 영상은 암석들로 뒤덮인 현란한 오렌지색 경관을 보여 주었다. 저 멀리 나지막한 언덕들도 보였다. 밤 늦도록 사람들은 새로운 영상이 나타날 때마다 TV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느새 호이겐스 호의 짧은 탐사활동은 끝이 났다. 궤도 비행하던 카시니 호가 호이겐스 착륙선의 신호를 수신하기에 너무 멀리 떨어지게 되어 호이겐스 호는 2시간 동안 허공에다 신호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는 배터리가 소진되면서 활동을 멈췄다.
사소한 실수는 착륙 미션에 오점을 남겼다. 호이겐스 호가 모선(母船) 카시니 호에 신호를 보내는 두 개의 라디오 채널 A와 B중 채널 A 수신기를 지상통제 센터에서 켜지 않아 자료의 절반인 350장의 사진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해도 호이겐스 호가 볼 수 있는 건 타이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래도 몇 가지 중요한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얻기에 충분했다.
호이겐스 호가 착륙하게 될 타이탄의 표면이 단단한 암석일지, 질퍽거리는 진창일지, 아니면 메탄 바다일지 그 전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호이겐스 호는 액체 웅덩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맨위는 다소 딱딱하고 그 아래는 부드러운 타이탄의 표면에 때로는 물로 덮여 있을 때도 있었다는 여러 증거들이 존재했다.
“액체 메탄이 계곡을 흘러간 흔적이 보입니다.” 미 지질조사국 래리 소더블룸은 말한다. “타이탄은 아프리카 사막 같이 보이지만, 비가 100년에 한 번, 심지어 1000년에 한 번만 내립니다. 그러나 한번 오면 홍수가 날 만큼 엄청 내릴지 모르죠.” 양쪽 극지는 더 많이 내릴지 모른다. 지난 7월 북극 상공을 근접비행하던 카시니 호는 메탄 호수로 뒤덮인 경간을 목격했다.
메탄은 타이탄의 딱딱한 표면 밑에서 생겨나 수분과 유기물질이 가득한 따뜻한 곳에 저장되어 있거나 얼음층에 갇혀 있다. 그러다 대기로 방출된 일부 메탄은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리고, 나머지 메탄 분자들은 자외선에 의해 좀더 복잡한 유기화합물로 변형되어 유독성 진눈깨비로 내린다. “타이탄은 태양계 최고의 유기화학 공장입니다.” 사우스웨스트연구소의 헌터 웨이트는 이렇게 묘사한다. “휘발유와 비슷한 결빙된 탄화수소층이 타이탄의 상당부분을 덮고 있어요. 이곳을 채굴할 수 있다면 석유고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타이탄의 바람은 수백만 년에 걸쳐 이 광활한 탄화수소 사막을 조각하면서 높이 900m에 길이가 수백킬로미터에 이르는 언덕들을 줄줄이 만들어 놓았다. “모습이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언덕들과 똑같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응용물리학연구소의 타이탄 전문가인 랄프 로렌즈의 말이다.
타이탄의 대기는 지구의 대기처럼 생명체에 꼭 필요한 질소가 주성분이다. 타이탄의 뿌연 대기 속에 있는 탄소 화합물 역시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타이탄은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일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너무 추워 생명이 싹트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로 지금까지 카시니 호가 밝혀 낸 것 중 가장 놀라운 발견은 또 다른 토성의 위성이 단순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호이겐스 호가 타이탄의 짙은 오렌지색 스모그를 뚫고 낙하하면서 찍은 360도 파노라마 사진. 2km 상공에서내려다본 최고 150m 높이 고지대의 밝은 능선들이 마른 호수 바닥으로 보이는 어두운 평원 위로 뻗어 있다.
타이탄의 표면에는 자갈만 한 얼음 덩어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토성의 또 다른 위성인 엔켈라두스는 표면이 얼음으로 덮여 있어 태양계의 그 어느 천체보다도 반사율이 높다. 25년 전 보이저 호는 같은 나이의 다른 위성들에 비해 엔켈라두스의 표면에는 대형 크레이터가 몇 개밖에 없음을 보여 주었다. 과학자들은 지질활동에 의해 크레이터 흔적들이 지워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엔켈라두스는 직경이 500km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위성이기 때문에 내부의 지질활동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열을 발생시키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수수께끼는 엔켈라두스가 E고리에 물질을 공급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얇고 성긴 E고리는 이 위성 근처에서만 높은 밀도를 보인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카시니 호는 엔켈라두스에 접근했다. 2005년 초 두 차례의 근접비행 도중 카시니호는 토성의 자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감지했다. 이 탐사선이 엔켈라두스의 남극 근처에 접근했을 때 토성의 자장 변형이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2005년 7월 14일 카시니 호는 엔켈라두스 남극 상공 170km 지점까지 내려가 각종 과학장비를 동원해 이 수수께끼 위성의 표면 온도와 화학물질의 흔적, 자장 등을 조사했다. 수집된 자료는 남극 근처에서 분출활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멀리서 태양이 엔켈라두스의 실루엣을 드러낼 때 카시니 호는 간헐천처럼 수증기와 얼음 입자들이 분출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엔켈라두스에서 수증기와 얼음 입자가 수백 미터 상공까지 분출하는 모습(천연색 영상과 채색한 영상)
남극 부근의 온도는 예상보다 높은 70℃로, 이 정도면 위성 표면 바로 밑에 있는 얼음을 녹여서 ‘호랑이 줄무늬’라 불리는 얼음 표면의 기다란 균열을 통해 물질들을 내뿜기에 충분했다. 이런 틈 주변에 새로 쌓인 눈에서 카시니 호는 탄소화합물을 탐지해 냈다.
한 가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토성의 E고리가 엔켈라두스 근처에서 부푼 모습은 위성에서 분출되는 얼음 입자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미스터리가 생겼다. 엔켈라두스의 열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엔켈라두스 내부에 갇힌 방사성 원소에 의해 발생했을 수도 있고, 토성의 강력한 중력이 엔켈라두스를 압착하고 팽창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
이보다 더 큰 의문은 이 조그만 위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기론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물과 에너지와 유기분자가 필요하다고 애리조나대학교의 보브 브라운은 말한다. “이곳에 이 세가지 조건 모두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생명체는 얼음 표면 10cm쯤 아래 따뜻한 물웅덩이 속에서 유기화합물을 먹고 DNA 비슷한 것을 통해 복제하면서 숨어 있을지 모른다. “우린 생명체가 있을 만한 곳을 찾고 있습니다.” 브라운은 말한다. “지능을 가졌거나 고도로 진화된 생명체를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살 만한 곳이 이곳에 있습니다.
카시니 호는 한 번 더 엔켈라두스를 찾아갈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벌써부터 이 위성에서 실제로 생명체를 찾아다니고 타이탄에서 생명 탄생 이전의 환경을 연구할 미래의 우주탐사선을 고려 중이다.
얼음 입자들은 다시 떨어지면서 남반구 표면을 부드럽게 만든다. 표면 아래 물웅덩이의 물질들이 표면의 갈라진 틈(채색 부분)으로 분출된다. "우린 생명체게 살기 적합한 환경을 발견했습니다." 카시니 호 영상팀 책임자인 캐롤린 포르코는 말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엔켈라두스 남극에 로봇을 착륙시킨 후 탐사체를 분출구 안으로 떨어뜨려 생명체를 찾아볼 날을 꿈꾸고 있다. 그런가 하면 타이탄의 궤도를 돌면서 소형 비행선 같은 탐사로봇을 타이탄 대기권에 띄워 이 위성의 언덕과 평원 상공을 이리저리 비행하며 조사하게 할 인공위성을 상상하는 과학자도 있다. 카시니-호이겐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애리조나대학교의 조너선 루나인은 우주 탐사에서 생명체 탐색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엔켈라두스와 타이탄 같은 곳은 우주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어 줄 겁니다.”
(출처: National Geograhic(한글판),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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