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맘/주저리주저리

집단무의식

염결 2006. 8. 5. 12:38

심리학과 종교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이은봉 옮김, 창, 1995.

 

 

 

 

우리는 '무의식 중에',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등의 말을 제법 자주 사용한다. 이런 말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 등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이미 의식하고 있는 것,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셈이다.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꿈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그러한 꿈을 분석하여, 자아가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장했다. 깨어 있을 때의 생각, 감정, 판단 등과 다른 무의식의 세계가 있고, 그러한 세계가 깨어 있을 때의 현실 세계와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의 요소가 잠을 자는 동안 표출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자신이 의식하기 두려워하는 대상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넣어 억압한다. 그런데 잠이 들면 의식적인 억압이 약화되고 무의식적인 요소들이 표출된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요소들은 불안을 일으키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왜곡, 변형된 상태의 꿈으로 나타난다.

이 책의 저자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였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무의식 및 꿈에 대한 견해가 어디까지나 개인의 정신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음에 비하여, 융은 인류 전체의 정신을 대상으로 삼았다. 요컨대 무의식이 개인적인 부분과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집단 무의식이란 한 민족 또는 전체 인류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일종의 '오래 된 기억'을 뜻한다. 개인 무의식은 특정 개인이 어릴 때부터 쌓아온 의식적인 경험이 무의식 속에 억압됨으로써 그 사람의 행동, 생각, 감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서 집단 무의식은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조상 대대로 경험했던 의식이 쌓인 결과로, 모은 사람들에게 공통된 정신의 바탕이며 경향인 셈이다.
 

 
 Carl Gustav Jung (1875~1961)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쌓아온 의식적인 경험은 상징을 통해 집단 무의식으로 전승된다. 여기에서 상징은 공상, 꿈,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융은 집단적으로 전승되는 신화, 전설, 민담 등이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여러 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을 광범위하게 분석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맹목적인 것, 무분별한 것으로 규정하여 위험스럽게 본 것에 비하여, 융은 무의식에 그런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못지 않게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 셈이다. 인간의 무의식 세계의 일부가 집단적인 차원에서 창조적인 문화 활동, 그러니까 신화, 전설 등의 상징 세계를 창조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융은 자신의 그러한 입장을 특히 종교라는 주제에 적용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무의식 세계의 종교적 기능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융은 고대 및 중세의 신비주의 종교, 연금술 등 다양한 문헌 자료를 활용하여, 종교적 상징 및 종교의 여러 형태가 세기와 지역을 불문하고 유사한 형태로 반복 출현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러한 종교적 상징의 반복 출현은 결국 집단 무의식의 다양한 표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꿈도 그 내용을 보면 집단적(다른 사람이 본 꿈과 공통적이라는 의미에서) 요소가 점하는 비율이 매우 높고, 그것은 마치 어떤 종류의 모티브는 여러 민족의 신화나 전설 가운데서 거의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런 종류의 모티브를 나는 원형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신화의 구성 요소임과 동시에 무의식의 자연발생적, 개인적인 소산으로서 거의 전지구상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집단적 성격을 지닌 형식이나 형상을 의미합니다."(99페이지)

또한 그는 4라는 숫자가 지닌 상징성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4라는 숫자가 아주 먼 옛날, 아마도 선사 시대 이래의 상징이고, 언제가 세계를 창조하는 신의 관념과 관련지어 생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꿈에서 4라는 숫자와 관련한 상징을 본 현대인들은 그러한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103페이지)

결국 융의 견해에 따른다면, 동서고금의 다양한 형태의 종교 및 종교 체험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원형 또는 집단 무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종교성 내지는 종교적 심성을 집단 무의식의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셈이다.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잠들 때 마다 꾸곤 하는 꿈만 해도, 합리적, 경험적인 영역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종교적 체험의 영역 역시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무의식과 꿈에 대한 융의 설명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비록 동서고금의 방대한 신화, 전설, 민담 등의 자료를 섭렵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는 하지만, 그것을 '합리적으로, 경험적으로' 확증할 길은 없다. 그러나 삶의 모든 측면을 반드시 의식의 영역에서, 합리적이고 경험적으로 설명해야만 한다는 고집도 지탱되기 힘들다. 그러한 고집이야말로,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지닌 또 하나의 신화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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