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가치
당신이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은 사랑 받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고 있는
신 이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간주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을 탐구하는 모험을 함에 있어서, 인간의 경험 - 하느님이 물질이라는 제한된 형체로 살아가는 삶 - 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당신은 인간이라는 세포체를 빌려 표현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하느님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왜냐하면 제한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나서야 무제한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느님 전체 - 순수 생각의 광대한 영역에서부터, 물질적 제한에 이르는 전 경로 - 를 경험하고 포용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하느님인 당신 자신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슬픔과 제한, 그리고 죽음이라는 환영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기쁨과 자유, 그리고 영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비록 당신은 매우 어렵고 심각하게 이 세상의 게임과 환영을 수행해 내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있는 이유는 당신을 가르치고, 확장하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당신이 당신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이 삶은 지혜라고 하는 생명의 가장 위대한 보상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게임들을 진행하고, 당신의 환영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일 뿐이다. 지혜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의 영혼 안에 모아진 가장 경이로운 보배이다. 지혜는 하느님이라고 하는 생각의 세계에서 행한 당신의 모든 모험으로부터 얻어진 느낌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멋진 옷이나, 으리으리한 집, 아니면 아주 빨리 달리는 자동차를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는가? 오로지 당신 자체 - 당신이 생명의 원리를 겪으면서 얻었던 모든 느낌들을 가지고 간다. 느낌이라는 것은 생명의 모든 것이다.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규율에 의한 폭정과 속박, 종족의 분열과 타락, 남녀간 또는 형제간의 반목 등을 통해서 인류가 배우게 된 모든 것들은, 어쩌면 하느님의 격을 가장 낮게 떨어뜨려 깨닫게 된 것들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모든 일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전쟁터에서 상대를 굴복하게 하고, 남의 자유를 부정하고, 여성을 차별하여 남성보다 비하하는 것이 어떠한 느낌인지 당신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먼저 그러한 것을 현실로 만들 것을 꿈꾸고, 또한 의도적으로 그 꿈대로 살아가는 창조자가 되어 보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결코 그러한 일들이 감성적으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삶과 순간순간을 그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그것은 너무나 확고부동한 현실이 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증에 걸리고 불안해하며, 그 꿈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당신은 묻는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짐승같이 대하도록 허용한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결과적으로 이렇게 잔악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것이라면, 하느님의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글쎄, 하느님은 늘 거기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의 환영 전체였고 당신의 게임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을 계속해서 사랑해 왔다. 왜냐하면 당신이 구상하는 대로 당신의 꿈을 경험하도록 허용해 왔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이 먼저 그 꿈을 창조했다는 사실 - 당신이 원할 때는 언제라도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당신은 지극히 불행하고 슬픈 이야기로 당신의 환상을 엮어 나간다. 당신은 자신의 몸을 망가뜨린다. 당신의 마음을 닫아 버린다. 우상을 섬긴다. 다른 사람에게 비판을 가한다. 당신은 심판하고, 증오하고, 소유하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실로 오만하다. 과연 무슨 목적을 위해서인가? 그렇게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 결말은 어떠한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천국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그래서 그것이 하느님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뛰어난 실체인 당신들 모두는 나름대로 근심 걱정과 사소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나, 당신이 진행해 오면서 자신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당신의 환영 아래 깊숙이 숨겨온 게임들보다는 훨씬 위대하다. 당신이 얼마나 강하고 훌륭한가를 알기만 한다면,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저주하거나, 비판하거나, 자신을 변형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로 내가 왔다 - 나는 당신의 과거 모습 전체이며, 또 당신이 앞으로 그러할 모습 전체이기도 하다 -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되살리는 것을 돕기 위해서. 그러면 당신은 앞으로는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고 죄의식과 두려움, 자기부정에 몸부림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실로, 그보다 훨씬 위대하다. 내가 왜 당신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는가? 당신이 또한 나이기 때문이다. 당신 존재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당신의 모든 모습은 나이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환영을 숙고하고 창조해 내도록 해주는 그 모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유아독존인 나는 이곳에서의 상식적인 표현을 초월한 사랑이다. 어떤 조건이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히 당신 그대로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자신의 잘못과 실패라고 여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인간이 옳고 그름, 완전과 불완전을 창조하면서 또한 죄의식과 후회라는 족쇄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은 삶의 진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대들이여,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어떤 것을 했다 하더라도, 이 지상에서 여러 번의 생을 경험했던 공덕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현재의 당신을 만드는 것을 도와준 삶의 경험이었다. 또한 실로 가장 소중하고 경이로운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런 대단한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의 당신이 가장 위대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지혜는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하므로.
당신이 해왔던 그 모든 것을 나 또한 꼭 같이 했다. 당신이 저질렀던 것처럼 나도 그 만큼 잘못을 저질렀다. 힘과 덕이 모자란 탓이라고 당신 자신을 힐난하는 그 모든 일들을 나도 역시 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의 연약함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결코 존재의 강함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잔학성을 혐오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당신들 모두를 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했든지, 그것이 아무리 나쁘고 비열하다고 당신이 판정을 내렸더라도, 당신은 단지 자신을 위한 배움을 창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한 배움의 과정에서, 당신은 상처입고, 고통받았으며, 슬퍼하였고, 자신을 비하시켰다. 그러나 이제 그것으로부터 일어섰다. 지금 여기에 당신이 있고,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알고 포용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패하였거나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을 숙고해 주기 바란다. 당신이 탄생한 그 순간부터,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은 생각... 모든 생각... 생각에서 생각 또 다음 생각을 감성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위대한 모험을 시작하였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 존재의 하느님인 영성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그 모든 생각 - 하느님의 모든 차원 - 의 느낌을 저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당신은 모든 생각을 당신의 영혼 안에서 받아들이고 느낀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들을 좀 더 이해해야만 한다면, 영혼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경험하도록 강권할 것이다. 왜? 오직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알 수 있는 그 생각의 모든 양상을 감성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은 생명이라고 하는 경험에 대한 보상이다.
당신은 영원토록 생명을 진화하게 하고 확장하여 창조해 가도록 종용되어 왔으며, 그러한 모든 창조와 발현 - 생각으로부터 빛으로, 물질로, 형상으로, 그리고 다시 생각으로. 즉, 사랑과 기쁨으로부터, 질투, 증오와 슬픔, 그리고 다시 기쁨으로의 반복을 경험하도록 종용되어 왔다. 당신의 영혼은 모든 형태의 생각과 태도, 감성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그 자신을 충족할 수 있도록, 경험에서 경험으로, 모험에서 모험으로 당신을 몰아 왔다 - 그리하여 당신은 하느님 전체이자 자신의 전체이기도 한 생각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하여 굶주려 있다. 당신의 영혼이 어떤 경험에 굶주려 있다는 것은 그 경험으로부터 얻게 될 감성적인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혼은 당신 존재를 온통 사로잡아 당신을 새로운 모험, 새로운 경험으로 몰아 붙일 느낌 - ‘원한다’라고 하는 - 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그 경험이 끝나고, 그로부터 얻어진 감성이 자리잡고 나면, 그 경험은 이 지상에 있는 황금 전부보다도 더 귀중한 보배를 당신한테 안겨준다. 그것이 당신을 지혜에게로 이끌어 주었음을 영혼의 속삭임으로 알 수 있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또 다시 경험할 필요는 없어.” 그러면, 당신의 영혼은 또 다른 갈망을 갖게 되고, 당신은 다른 것들을 행하도록 종용을 받을 것이다. 당신이 그럴 필요가 있고, 그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당신 내면에 있는 불꽃이 당신이 당신에게 모든 삶을 경험하고 알기를 재촉하기 때문에.
그러면, 당신은 당신에게 옳지 않다거나, 혹은 당신이 실패할 거라고 알면서 그 무엇을 경험하려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당신은 항상 진지한 호기심, 흥미와 즐거움을 가지고 허다한 모험을 해 왔다. 시작할 때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잘 몰랐지만, 단지 전에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은 그 일에 착수하였다. 경험은 새롭고 흥분되는 것이었으며,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배우기를 바랐다. 비록 모험 중에 고통을 경험한다고 해도, 그것은 ‘고통’이라는 감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결국 생명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경험은 당신의 삶에서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당신의 영혼이 당신에게 감성과 이해를 얻기 위한 또 다른 모험을 경험할 것을 재촉하므로, 당신은 그 다음 모험에 다시 착수한다. 이렇게 하여 당신은 영혼의 행복과 충족을 얻는다.
당신이 행하는 것은 모두 다, 그것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경험은 당신에게 적절한 것이라는 것을 당신의 영혼 안에서 느낀다. 어쩌면 그것을 더 잘 해내거나 다르게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당신이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그 모험을 경험하고 난 뒤이며, 그러고 나서 그것으로부터 얻은 느낌은 지혜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먼저 경험을 시작하고 그것으로부터 지혜의 보석을 거둘 때까지는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결코 알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누군가가 비난받아야 하겠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은 무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패라는 것은 그것이 있다고 믿는 자에게만 하나의 현실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도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결코! 당신이 행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 비천하고, 비열하고, 비밀스러운 것이라도(사실은 그렇지 않다) - 당신은 아직 살아 있다.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실패한다는 것은 정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정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명은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순간 진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삶에 있어서 결코 멈춰 설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모든 순간은 항상 더 크고 넓은 이해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항상 무엇인가를 배워 왔던 것이다. 어떻게 불행해 보지 않고 행복에 대해 알겠는가? 당신이 거기에 도달하여 그것이 상상해 왔던 것과는 다른 색깔이라는 것을 알아 내지 않고서, 어떻게 당신의 목적지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당신은 결코 실수하지 않았다. 결코!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가? 소위 말하는 당신이 저지른 그 모든 잘못들, 실패, 오점들은 더 적절하게 표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하느님에게로 향한 발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로지 그러한 발걸음을 떼어놓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배우는 데 대해서 결코 죄의식을 갖지 말라. 지혜를 얻음에 있어서 결코 죄의식을 느끼지 말라.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당신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은 모두 필요했던 것이다. 당신들은 늘 옳은 선택을 하였다. 그것들 모두! 당신은 내일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이어져 나가는 참으로 축복된 날들을 살아갈 것이다. 그때에 당신이 발견하게 될 것은 지금 당신이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이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삶은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을 영원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당신의 꿈을 창조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무엇을 창조하든지, 당신은 이해를 얻기 위해서, 그것을 전체 의식의 모든 곳에 추가한다. 당신은 결코 그것을 전체 의식에서 떼어내지 않는다. 떼어낼 수도 없다. 당신이 기꺼이 겪어 보는 그 모든 모험은 생명의 열정과 강도를 더하게 된다. 당신이 포용하는 모든 생각, 경험하는 모든 환영, 당신이 찾아내는 모든 발견은 아무리 사악하고 비천한 것이라도 당신 자신의 이해를 넓히고, 그 이해는 다시 인류의 의식을 키우고 넓히며, 하느님 마음을 확장한다.
만약에 당신이 인생에서 실패했거나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당신 자신의 내면과 외면의 위대함을 인지하는 능력과 삶 전체에 미치는 당신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과거의 그 어느 부분도 제거해 버리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 어느 것도! 당신의 지고한 경험과 비천한 경험 사이의 마찰은 당신의 영혼 안에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지혜의 진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러한 꿈을 다시 꾸어야 하고, 그러한 게임을 다시 창조해 내야 하고, 그러한 경험을 다시 겪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들을 경험했고, 그것들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생명의 가장 소중한 보배인, 느낌이라고 하는 것으로 당신의 영혼 안에 기록해 두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곳에 왔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신 이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간주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생의 경험에서, 당신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다. 당신은 그것을 세상에 베풀었다. 삶을 펼쳐 나가는 데 대한 보상이 추가되었다. 당신의 삶은 당신 안에 살아 있는 불꽃이 경이롭게 펼쳐지는 장관이었다. 그것은 존경과 신성함과 성스러움을 가지고 회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당신은 언제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든지, 당신은 하느님이다. 어떠한 인연을 경험하고 있든지, 당신은 여전히 하느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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