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신선이 김유신에게 전했을 것으로 보이는 육정육갑중악경
황제가 탁록에서 치우천왕과 사생결단을 할 때, 황제가 치우천왕을 패배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 자부신선이다. 여러 종류의 도가서道家書에는 황제가 금쇄金鎖에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치우천왕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는 신시시대이므로, 신시가 열리는 청구를 신성시하던 시대였다. 청구를 다른 말로 소도라고도 하였는데, 소도라는 말은 소성蘇姓을 가진 곤오昆吾라는 분이 청구를 관리하면서 생겨난 말로 보인다. 소도로 불리기 전에는 청구로 불리었다.
곤오가 청구를 관리하기 전에 청구는 발해만에 있는 황하 하구 쪽에 있었다. 그러나 지진으로 청구가 침몰하면서, (이상 신시 연구가 장동균씨의 주장, 한단고기를 주석한 임승국씨도 청구가 산동반도지방으로 비정된다고 하였다) 청구는 떠돌이신세가 되었다. 태산泰山, 신정新鄭, 이런 곳이 청구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 청구로 불리게 된 지금의 탁록을 놓고 황제와 치우 두 분이 다투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기이하게도 무려 10년 동안 탁록에서만 싸웠다.
탁록의 입구라고 할만한 곳이 금쇄라는 곳이다. 필자와 함께 “천문에서 역사를 찾아내는 공부”를 해 오던 역사천문학회외원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금쇄를 밟게 되었을 때, 필자는 여기가 황제가 자부신선으로부터 <육정육갑금쇄경>을 받았다는 곳임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도가서에는 황제가 치우천왕을 물리치기 위하여 칠성단을 쌓고 7일 동안 기도하였더니, 구천현녀가 나타나서 <육정육갑금쇄경六丁六甲金鎖經>과 <자부영장紫府靈章>을 주었다고 전한다. 황제는 이 두 가지에 의지하여 치우천왕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
자부는 단군왕검 때, 홍익인간을 백성에게 가르친 발귀리의 아들로도 나오는 분이다. 그러나 단군왕검이 황제보다 후대의 사람이므로, 동명이인으로 볼 수 있다. 황제의 시대에 이미 자부신선이 있었던 것이다. 자부신선이라는 선맥仙脈이 있고, 이 선맥을 통하여 선가의 온갖 저작들이 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자부紫府의 자紫는 북두칠성인 자미두紫微斗, 부府는 남두육성인 천부天府에서 따온 문자이다. 그러므로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을 모두 포함한 말이다. 자부신선은 <마한세기 상>에, 이미 “한웅천왕 때 자부신선이 삼황내문을 지어 한웅천왕에게 진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제가 동쪽으로부터 청구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선생을 뵙고 <삼황내문>을 받았다”고 갈홍葛弘(283-343)이 지은 <포박자抱朴子>에 기록되어 있다.
풍산은 한인천제가 한국을 세운 풍주의 배곡이 있는 산으로 추정된다. 풍산을 밝산이라고도 하므로, 고조선의 근거지가 되는 곳이라고도 하겠다. <수경水經>의 하수河水 주에, “황하가 남쪽으로 북굴현北屈縣 고성 40리를 경유하는 데에 풍산이 있고, 꼭대기에 둥그런 굴이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며, 늘 그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혹시 이 곳이 자부의 선맥이 수도하던 곳인지도 모른다. 선도에서 갈라져나온 도교에서 자부신선을 자미대제紫微大帝라고 하였는데, 선가와 도가가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의 명칭으로 볼 수 있다. 그가 북두칠성의 성기星氣를 타고났으므로, 태을원군太乙元君이라고도 하였다.
황제가 자부신선에게서 받았다는 <육정육갑금쇄경>은 귀신을 부려 전쟁에 이기는 비법을 기록한 책이다. 황제가 금쇄에서 받았으므로 <육정육갑금쇄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구천현녀에게서 받았다고 하여, <구천현녀은서九天玄女隱書>라고도 하였다.
이 비서가 노자에게 전해졌을 때는 <금서옥전金書玉篆>, 진시황에게 전해졌을 때는 <금쇄옥약시金鎖玉鑰匙>, 한나라의 장량에게 전했을 때는 <황석공비서黃石公秘書>, 동방삭에게 전해졌을 때는 <석함기石函記>, 원천강에게 전해졌을 때는 <복사결覆射訣>, 동화로에게 전해졌을 때는 <자부영장紫府靈章>이라고 하였다.
비서, 사결, 기로 표기한 것은 모두 비결이고, 옥전과 영장으로 표기한 것은 모두 부적이다.
이 비서가 우리역사에도 전해졌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이 삼국사기 열전에 있다. 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유신이 17세 되던 해에, 홀로 중악의 석굴에 들어가서 기도하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무도하게 신라의 땅을 침범하고 있어, 나라가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저는 환란을 없앨 뜻을 갖고 있사오니, 하늘이 살피어, 나의 손에 힘을 빌려주소서.”
4일 만에 갈의(베옷)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나는 그대와 인연이 있어서 나타난 난승難勝이라는 노인이다. 그대가 어린 몸으로 삼국을 아우를 큰 뜻을 품고 있으니 장하다.”
하며 비법을 가르쳐주며 말하기를.
“이 비법은 삼가 써야지 망령되게 전하지 말라. 만약 이를 불의에 쓰게 되면 도리어 앙화를 받게 되리라.” 하였다.
이후에 김유신이 난승 노인에게서 받은 비법을 썼는지 아니 썼는지 알 수 없으나 눈여겨 볼만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김유신이 노인에게서 받은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온갖 기록을 다 뒤져보아도 그 기록을 찾을 길이 없으니 비법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필자가 추측하기로, 그것이 귀신을 부리는 비법이 적힌 <육정육갑중악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필자가 <육정육갑중악경>이라고 한 것은 그 경을 받은 곳이 중악이므로 그렇게 적은 것뿐이다. 이러게 보면, 난승이란 노인은 자부신선의 변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몸, 맘 > 역사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무당과 천문 (0) | 2006.04.05 |
---|---|
[스크랩] 하늘에서 벌어지는 굿판 (0) | 2006.04.05 |
[스크랩] 한류철학의 기초가 되는 천부경적 사유 (0) | 2006.04.05 |
[스크랩] 북두칠성을 쫓아낸 칠성각 (0) | 2006.04.05 |
[스크랩] 잊고 사는 우리의 최고 별 (0) | 2006.04.05 |